신두의 역사
신두 문명
신두는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로, 그들의 기원은 기원전 7천년 경의 거대 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신두’는 특정한 왕국의 이름이 아니라 해당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 일체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에도 신디 강을 따라 놓인 유적지에서는 옛 왕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신디 강의 상류와 하류의 옛 도시 터는 서로 다른 문화적 특성을 보이는데, 강 상류에서 문명이 더욱 번성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닌 다수 도시국가의 형태로 긴 시간 존속하였다. 르타교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아트만교 및 벽돌과 도자기를 특징으로 하는 당대의 정교한 도시계획 및 배수 시스템, 수공예 기술과 야금술 등은 현대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기원전 1800년경부터 비슈바카르마 북부를 전부 장악한 거대문명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타 지역과 단절되었다. 이는 현대 역사가들의 연구 과제로, 다양한 사료에서 갑작스러운 기후 변동과 대규모 재해 및 사회 혼란의 징후가 발견되나, 여전히 그 어떤 것도 명확한 이유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아탄 시대
신두인들은 그 이후의 약 1500년간을 ‘아탄 시대’라고 이르며, 이는 고대 신두어로 ‘순회’를 뜻한다. 이 시기 고대 신두 문명은 한 번 쇠퇴하였으나, 동시에 신두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르타교가 비슈바카르마 북부에 굳건하게 뿌리내리도록 했다. 아탄 시대 비슈바카르마 대륙에 거주하던 이들은 부족이나 소도시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거주했으며, 르타교의 핵심인 윤회 사상을 확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는 다시 비슈바카르마 북부에 왕국들이 난립하기 시작했으며, 현대 신두의 독특한 체계인 ‘우미카’가 제도화되었다.